오후 7시 20분:
지각한 사람 하나도 없이 일행이 모두 모였으나 예기치 못한 불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운의 발단은 김두환 동문의 旅券에서부터 시작. 여행사 직원은 이미 記載되어 있던 舊 旅券 번호로 중국 비자를 받았고, 김 동문은 舊 旅券은 연구실에 두고 新 旅券만 달랑 들고 나왔기 때문(누가 그런 줄 알았나.). 단체 비자 용지에 적힌 여권 번호와 휴대한 여권 번호가 달라 김 동문은 눈물을 머금고 우리를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 잘못인지, 김 동문 잘못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를 두고 떠나는 사람이나 돌아서 집으로 향해야 하는 사람이나 마음이 무겁고 짜안하기는 매일반. 여기서 우리가 배운 것이 있다면…, 新 旅券도 좋지만, 舊 旅券도 챙기자.
10/26
西安에서 맞이한 아침:
5성급 금석국제호텔에서 서양식과 동양식을 적당히 안배한 아침을 먹고 시내 관광과 중국 5대 名山 중 하나라는 華山 관광을 위한 기대를 가슴 가득 품고 길을 나섰다. 입담 좋은 가이드 ‘김 따거’의 입 운동은 쉴 새 없이 이어졌으나 선잠 깬 우리의 눈은 게슴츠레 풀리고, 하품이 한 바가지 물린 우리의 입은 연신 뻐끔거리기 바빴고, 무거운 머리는 김 따거의 설명을 구령 삼아 아래위로 좌우로 꺼떡대기 시작.
명나라 홍무제 때 건축되어 중국에 보전되고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완전한 고성 중 하나라는 서안성벽에 도착. 서안입성을 허락하는 長安安遠門 通關 文牒을 손에 들고 금 열쇄를 목에 건 일행은 보무도 당당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입성을 허락하는 황제의 聖旨 낭독을 듣고 춤과 무술로 환영하는 입성식 절차의 재현을 관람한 후 성벽에 올라 서안 시내를 조망. 일행의 기분은 서서히 상승 기류를 타고 희희낙락 나풀나풀.
華山 등반:
매연과 안개가 자욱한 서안에 모처럼 날이 든다 하여 일정을 바꾸어 華山행을 감행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버스로 2시간. 단잠을 자기에 적당한 시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것이니 염려 말라던 서울에서의 말과는 달리 華山의 절경을 보려면 등산을 아니 할 수 없었다. 똬리를 튼 뱀 모양 길게 이어진 케이블카를 타려는 현지인들의 꽁무니에 서서 한 시간여를 기다려 두 대의 케이블카에 나누어 타고 화산 중턱까지 올랐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는 데 안 오를 수도 없고, 젖 먹은 힘까지 동원하여 갈 수 있는 데까지 올랐다. ‘죽어도 정상에 가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죽어도 좋아’ 씨와 산에서는 휙휙 날라 다닌다는 ‘다람쥐’ 여사, 큰 키와 긴 다리로도 헉헉거리는 ‘키다리 아저씨’, 그리고 처음 등장한 ‘왈순 아지매’는 낙안봉이라 불리는 南峰 정상탈환에 성공. 낙오자인지 아니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여섯 명은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에서 웅장한 華山의 절경을 보며 감탄, 또 감탄. 그리고 이어진 촬영. 만용을 부린 우리의 ‘키다리 아저씨’는 下山하여 우리 현명한 육인 앞에서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달달 떨며 큰대자로 뻗었다. 그의 말로는 우리를 놀려주려는 해프닝이었다는 변명이 있었지만, 그의 얼굴색은 백지장과 같았고, 입술은 푸른 연지를 바른 것 같았다. Any way, 우리는 모두 무사했으며 나름대로 볼 것은 다 보았고 느낄 것은 다 느꼈다.
김치찌개:
단 하루 지났건만, 저녁 메뉴 김치찌개와 삼겹살 구이는 대환영이었다. 테이블 두 개를 이은 자리에 열 명이 기대에 부풀어 입에 침이 고인 채 고기가 구워지기를 기다렸으나 한 테이블의 가스불이 가물가물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종업원이 달려와 두어 번 손을 보았으나 시원치 않기는 매일반. 있는 것이라고는 교양뿐인 일행은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앉으라면 앉으며 가스불이 세어지기만을 기다렸더니 주인장 왈 ‘도대체 뭐 하시는 분들이기에 이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김따가의 전갈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동창들'이라고 자수할 수밖에. 그 때부터 김 따거는 조금 얼은 듯 아첨과 아부의 말을 잇고 또 이었다. 고량주와 삼겹살의 조화가 영 아니라는 ‘죽어도 좋아’ 씨는 끝내 소주로 반주를 삼았다. 소주와 삼겹살의 인연은 언제나 끝나려는지. 그 영원한 찰떡 궁합이여.
전신 마사지:
그것도 등산이라고 온몸이 곤장을 맞은 것 같다. 때마침 일행을 기다린 다음 순서는 전신 마사지.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이 아니 좋은가. 희희낙락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 떡 주무르듯 하는 뭇 사내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삼매경에 빠지기 한 시간. 깜박 졸고 난 탓인지, 아니면 손맛이 좋았는지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집에서건 밖에서건 서로서로 만져주고 다듬어주는 것이 건강에 최선인 듯. 그것이 바로 氣를 돌리고 살리는 것 아닐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