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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월 동음회 후기
예년의 이맘때 보다 다소 덥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화사한 5월의 늦은 봄날이다. 이런 아름다운 날에는 밝고 명랑한 곡들이 어울릴 텐데 자주 갖지도 못하는 동음회를 위해 이리저리 생각하여 선정한 곡이 하필이면 모두 어둡고 비감이 느껴지는 단조의 것들이니 이를 어찌하랴! 하지만 어렵고 힘든 시대에는 희극이, 평화롭고 행복한 때에는 비극이 더 인기가 있다는 말과 같이 음악도 아름다운 날 듣는 비감 어린 음악이 더 마음에 깊이 닿고 감동이 클 수 있지 않을까.
먼저 감상한 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0번 d단조 작품번호 466>이다. 이곡은 사실 김정희 동문이 일찌감치 신청한 곡인데, 모차르트의 27개 피아노 협주곡 중에 작품성이 뛰어나고 음악사적으로 의미 있는 곡이다. 당시 사교음악의 성격이 컸던 협주곡은 대부분 밝고 명랑한 장조의 곡이었으나 처음으로 단조의 어둡고 열정적인 곡을 만들어 청중들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협주곡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또한 반주 기능이 컸던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독주악기와 대등한 수준으로 올리고, 특히 목관의 선율 담당 기능을 강화하고 형식에서도 세부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여 베토벤과 후대 낭만파 작곡자들이 즐겨 작곡한 교향적 협주곡의 기초가 되었다.
제1악장은 어둡고 우수에 찬 듯한 제1주제와 보다 밝고 아름다운 제2주제를 가지고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긴밀히 주고받으며 열정적인 연주를 펼친다. 여기에 저음 현의 강한 셋잇단16분음표의 리듬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분위기를 무겁게 이끌어 간다.
제2악장은 피아노가 무척 아름다운 주제선율을 천천히 노래하고 오케스트라는 이를 부드럽게 따라 간다. 중간부 피아노가 빠르고 격한 상승음형으로 새로운 악상을 연주하고, 이에 대응한 플루트, 오보에 등의 절묘한 색채적 효과음이 인상적이다.
제3악장 곡은 피날레답게 빠르고 긴박하게 전개된다. 목관과 피아노의 주고받는 대화가 재미있으며, 전체적으로 어두운 열정이 지배적이나 끝에는 당당하고 밝게 마무리 된다.
두 번째 감상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4번 f단조 작품36>은 표면적으로는 표제가 없는 절대음악 형식이나 내용적으로는 표제성이 강한 곡이다. 인간에 항상 붙어 다니며 언제 치명적인 불행을 안길지 모르는 ‘악의적인 운명’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뇌와 절망 속에 방황하면서 그래도 행복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곡이다. 차이콥스키는 그의 최대 경제적 후원자였던 폰 메크(Nadezhda von Meck)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악의적 운명을 ‘다모클레스의 칼(the Sword of Damocles)'에 비유하였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란 권좌(權座)는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 아래에 앉아있는 것처럼 항상 불안한 것이란 점을 빗댄 서양 속담이다. 기원전 300년경 그리스 지방의 한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 왕이 그의 자리를 부러워하는 시종 다모클레스를 왕좌에 앉히고 천장을 바라보게 했더니 한 올의 말총에 대롱대롱 매달린 칼이 머리를 겨냥하고 있음을 보고 기겁을 하여 자리에서 뛰쳐나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적 우수가 짙은 선율, 섬세한 슬픔의 감정표현과 격정의 분출, 다양한 음색과 풍부한 음향 등을 통해 이러한 표제성을 잘 드러내었을 뿐 아니라 매혹적인 선율의 아름다움과 다이나믹한 전개 등으로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과 감상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곡의 작곡은 1877년 5월 경 시작되어 이듬해 1월에 완료되었다. 당시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매년 6천 루불의 거금 지원 약속을 받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작곡활동을 할 수 있는 때였다. 그러나 한편 1877년 7월 그는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A. Miliukova)의 광적인 구애에 떠밀려 그녀와 전격 결혼을 하였는데, 불화로 인해 한 달도 못되어 가출을 하였었고, 모스크바 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이후 아내와 별거 상태로 스위스와 이태리에서 요양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와중에 제4번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제1악장은 호른과 파곳의 강렬하고 위압적인 서주로 시작되는데, 이 서주가 전체 곡의 주된 악상으로서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은 악의적 운명을 의미한다. 제1주제는 고뇌와 절망하는 느낌을 안기며, 제2주제는 부드러우나 애수가 감돌며 여기에 감미로운 현악의 선율이 중첩하여 아름답게 흐른다. 마치 부드러운 꿈속에서 행복을 찾는 듯하다. 운명의 악상이 수시로 등장하고 제1, 제2주제들이 반복된다. 종결부 직전에 재차 운명의 악상이 강하게 등장한 후 절망적인 제1주제의 요소가 격렬하게 연주되며 끝난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항상 머리 위에 걸려있는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은 이 운명은 행복을 막고 평화와 위안을 방해하며 혼에 끊임없이 독을 붓는 숙명적인 힘입니다. 우리들의 생활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꿈과의 교차에 불과합니다. 행복은 어디까지나 꿈입니다. 운명은 우리들을 잔혹하게 불러 깨웁니다”라고 설명한다.
오보에의 아름답고도 애잔한 선율로 시작되는 제2악장은 “비애의 또 다른 일면을 나타냅니다. 일에 지친 사람이 밤늦게 집에 돌아와 혼자 앉아 있을 때 그를 둘러싼 우울한 감정입니다. 여러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조차도 없습니다.”라고 차이콥스키는 설명한다. 분위기가 쓸쓸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악장이다.
현악기군의 피치카토(현악기에서 줄을 손가락으로 퉁겨 소리 내는 주법)로 시작하여 피치카토로 끝나는 제3악장은 기이하고 몽환적이며 변덕스러운 느낌을 준다. “술에 취했을 때 어지러이 뇌리를 스쳐가는 갖가지 공상들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현실과는 관계가 없는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차이콥스키는 말한다.
제4악장, 전관현악의 강렬한 연주로 시작하는 제1주제, 러시아 민요 ‘들판에 서 있는 자작나무’의 소박한 제2주제 선율, 경쾌한 무곡풍의 제3주제가 차례로 연주되고 이후 세 주제가 교대로 등장하면서 고조시켜나간다. 코다 직전에 1악장 운명의 악상이 재차 등장한 후 세 주제의 강렬한 변주로 전체 곡이 끝난다. 차이콥스키는 “자기 자신 속에서 환희를 찾지 못하면 주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라. 민중축제를 즐기는 그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행복 추구의 모습을 보고 그들처럼 행복을 즐겨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악의적인 운명은 여전히 따라다니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행복을 찾지 못한 채 종결되는 모습이다.
참석한 동문들은 이경애, 최일옥, 안소연, 윤화자, 장순근, 임혜순, 정덕진, 최인용, 김성수, 유한용, 강근택, 최용철, 장내식, 최재원, 홍종철, 박성수, 김정희, 박영배, 오상태, 김용태, 김내원, 이동화 이상 22명.
모두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긴 하지만 늦은 오후 장시간 앉아서 클라식 음악을 듣다보면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한 두 번은 졸게 마련인데 모두들 조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감상을 위해 눈을 지그시 감는 것과 조는 모습은 구별이 되니까...). 역시 문리대 출신다운 수준 높은 감상 태도에 해설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종전 백년옥에서 하던 저녁식사의 장소를 바꾸어 이번에는 좀 더 떨어진 식당 "서초갈비"의 방을 예약해 들어갔더니 방이 아니고 홀에 앉으란다. 갑자기 예약이 들어온 고기 먹을 단체손님을 위해 탕으로 식사만 할 우리들의 사전 예약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유달리 돈의 위력이 강한 한국적 현실을 이해는 하지만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모두들 맛은 좋다니 다음에도 실속 있는 이곳을 찾기로 하였다.
식후 바로 헤어짐을 아쉬워 한 일부 친구들의 발의로 커피집에 들렀다. 부드러운 봄날 저녁 대로변이긴 해도 조용한 야외 테라스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도 맛이지만 대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동음회 감상소감에서부터 다음 곡목의 선정, 해설방식 등등 기탄없는 의견 교환으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음부터는 식후 커피타임을 필수코스에 넣도록 해야겠다. 물론 간사직을 맡아 궂은일과 관리감독을 도맡아 수고하시는 김내원 동문의 허락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날 커피값을 부담한 최재원 동문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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