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아홉 시에 잡니다.
언제나 잘 자고 잘 일어납니다.
일어날 때 쯤 되면 조그마한 치자 물 들인 창문커튼이 황색으로 밝아지고 곧 이어 알람이 울립니다.
이때에는 숲속 잠자리에서 갓 깨어난 산새 들새 숲새가 함께 모여 "지지 배배"
온갖 소리로 새벽인사를 하는 게 몹씨도 요란법쩍합니다.
그러다가도 해가 돋으려고 용틀임할 때 쯤이면, 갑작스러이 조용해집니다.
이때부터는 내가 부산해집니다.
올 초까지 산길도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시사철 빠짐없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겨울 지나 초봄부터는 밭일과 그릇 일이 우선되다 보니,
산길 안가면, 산길 걸어 걸리는 두 시간은 생짜로 얻는 노동시간이 되었습니다.
풀과 나무 쪽밭과 산숲으로 둘러싸인 우리집 텃밭에서의 자연 속의 흙노동은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마져에도 자양분이 됩니다.
나로서는 흙노동이 산길 걷는 평안함에 못지 않습니다.
한동안 먼산에서 소쩍새 울더니 요즈음에는 뻐꾹새가 대신합니다.
간혹 딱다구리 나무 쪼는 소리도 들립니다.
밭과 마당 한켠 여기저기에는 오래도록 붓꽃이 날렵하게 몸 풀어 놓고 있고,
작약도 꽃문을 열어 하얀 몸 분홍빛 자태로 몸치장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장미꽃 녹색빛 꽃봉오리도 못내 붉은 몸 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접시 꽃대도 백합 꽃대도 굵고 높게 기새를 올립니다.
감자 잎대도 토마토 줄기도 제 시절 제 철 맞고 있습니다.
감자꽃을 따주고 토마토도 긴 대에 묶어 쓰러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집에는 신문이 없습니다.
오래 된 컴퓨터와 텔레비젼으로 하루마다 높아만 가는 세상모습을 접합니다.
김 화가는 젊은이들의 놀이 프로그램도, 한 두가지 연속극도 좋아하지만,
나는 격투기를 좋아합니다. 좋은 영화가 없으면 내겐 잠시잠깐이라도 몸 쉬일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텔레비젼으로 김화가와 다투는 일은 없습니다.
김 화가가 등장하면 나는 슬그머니 일어섭니다.
살림집은 일찌기 세 놓고 있습니다.
김 화가와 나는 화실 한쪽을 칸 막아 살림집으로 꾸며 씁니다.
작아도 요긴한 건 다 있어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집 마당쇠요, 스스로 흙그릇 꾼이지만,
김 화가는 본업인 미술작업은 물론 집안 일은 혼자 맡아 합니다.
작은 아들은 집에 와 그림작업에 몰두해 있습니다.
직업이 늦깍이 화가이라 그러한지 화폭을 떠나는 일이 드문니다.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니 나는 아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모릅니다.
김 화가는 작업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나, 역시나 나는 비평하거나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화실과 내 작업장을 막고 있던 판넬 벽 하나를 떼어냈습니다.
이제껏 나는 내 작업장에 가려면 마당 한 구석을 가로질러 다녔습니다.
이로써 동선이 훨씬 더 짧아졌습니다.
카나다에 있는 큰 아들의 직장문이 닫혔습니다.
큰 아들의 직장이 있는 카나다 서부 록키 동쪽편 북쪽 땅,
샌드오일 산업의 중심지 포트멕머리시가 장기간의 초대형 산불로 폐쇄되어 그렇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며느리 가희는 어려운 일 맞았으나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 합니다.
내 자신에게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일.
몸과 마음과 혼, 매 시간 맑게 다듬고 싶을 뿐입니다.
흙노동 부지런히 하면서, 산길 천천히 걸으면서.
포트멕머리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세계적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는 오늘을 삽니다.
오늘은 일요일, 김 화백과 함께 성당에 나가는 길에도
나와 자연을 되짚어 보고, 풀씨 하나에서도
나의 오래 전 좌우명,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내가 꿈꾸는 조그마한 공동사회를 그려보려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두 손 모을 것입니다. ( 끝 )
2016. 5. 22. 우리들의 살림공간 화실의 컴퓨터 앞에서
염농재의 신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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