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월 동음회 후기
매 3개월 마다 동음회를 열다보니 다음 차례는 항상 계절이 바뀐다. 지난 8월의 늦더위 속에 가졌던 동음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도 깊어진 11월 중순, 만추의 풍경 속에 음악을 좋아하는 동숭친구들 23명이 모여들어 재회의 기쁨과 클라식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누렸다.
소슬한 바람 속에 산과 들이 물들고 낙엽 지는 가을은 우리들로 하여금 사색하고 고독이나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이번에 감상할 곡으로는 가급적 이런 가을의 분위기에 어울릴 곡들을 골라보았다. 휴식시간을 중심으로 전반에는 모음곡(組曲), 뉴에이지 음악, 우리가곡 등 소품곡을, 후반에는 장중하고 깊이가 있는 브람스의 곡을 듣도록 하였다.
첫 번째 감상한 모음곡 ‘행성(Planets)'은 영국의 대표적 근대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인 Gustav Holst(1874~1934)가 태양을 도는 7개의 행성(지구는 제외)을 주제로 1914년에서 1916년 사이에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이다. 천체의 신비와 점성술에 흥미가 많았던 그는 점성술의 관점에서 각 행성의 상징을 표제적으로 작곡하였는데, 20세기 초 낭만파음악에서 현대음악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의 인상주의나 원시주의, 표현주의 같은 새로운 작곡기법과 낭만주의적 서정성과 영국의 민요 등이 결합된 흥미로운 곡이다.
7곡중에 제1곡과 제4곡만을 감상하였다. 제1곡 화성(Mars)은 '전쟁을 가져오는 자(the Bringer of War)'로 표제되어 있다. 강렬한 리듬 속에 저음 관악기군의 어둡고 비장감 넘치는 듯한 음색의 선율이 무겁게 나오고 전체 오케스트라의 파국적 굉음 등이 잇따르면서 전쟁의 공포, 처절함, 파멸 등을 실감케 한다. ‘기쁨을 가져오는 자(the Bringer of Jollity)'로 표제되어 있는 제4곡 목성(Jupiter)은 영국의 민요 선율이 나오는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호른을 비롯한 금관악기의 화성이 압권이며, 전체적으로 밝고 웅장하며 환희에 찬 듯하다. 참고로 나머지 별들의 표제는 제2곡 금성(Venus)ㅡ평화를 가져오는 자(the Bringer of Peace), 제3곡 수성(Mercury)ㅡ날개 달린 전령(the Winged Messenger), 제5곡 토성(Saturn)ㅡ노년을 가져오는 자(the Bringer of Old Age), 제6곡 천왕성(Uranus)ㅡ마법사(the Magician), 제7곡 해왕성(Neptune)ㅡ신비로운 자(the Mystic) 등이다.
이 곡에서 각 별들의 표제는 과학적 분석이나 신화의 내용이 아닌 점성술에 입각한 것이라고 한 본인의 설명에 대해 휴식시간에 김정희 동문이 화성은 물론이고 금성과 수성, 목성 등의 표제가 신화적 이미지에 가깝고, 특히 목성의 경우 the Bringer of “Joy”가 아닌 “Jollity”를 쓴 것도 제 신들의 왕인 Jupiter에 더 어울리는 단어임을 내세워 이 곡이 신화의 내용과 밀접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서양의 점성술이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니 김 동문의 지적은 맞다고 하겠다. 다만 Holst가 자신의 작곡은 점성술의 관점에서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설명이 부족하거나 대충하고 넘어가다가는 동숭 친구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두 번째 감상한 Bill Douglas(1944~)의 'Hymn'은 바순(파곳)이 연주하는 곡으로, 3~4분의 짧은 곡이지만 저음 목관악기의 독특한 부드러운 음색과 무척 아름다운 선율은 듣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것 같다. 카나다 출신의 Douglas는 피아니스트및 바순니스트로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전공하였고 예일대학원에서 바순과 작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즈, 클라식, 현대음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연주와 작곡활동을 하였고 현재는 뉴에이지(New Age)음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뉴에이지음악은 환경오염, 핵문제, 물질문명에의 노예화 등으로 위축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에 반발하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된 뉴에이지운동의 주요 실행방법의 하나이다. 음악에는 정신은 물론 육체의 질병까지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보고 치유를 위한 명상적이거나 종교적 분위기를 풍기는 곡들이 많다. 자연을 강조하며, 리듬보다는 선율을, 강음(Forte)보다는 약음(Piano)을 선호하고, 대규모 오케스트라보다는 독주나 실내악 등이 주를 이루는 Semiclassic 정도의 음악이라고 하겠다. 이곡은 당초 최혁 동문이 Bill Douglas의 음악을 좋아한다며 듣고 싶어 하여 선곡한 것인데, 그 이유를 알만하다.
이어서 우리나라 가곡 황인호 작시/윤용하 작곡의 ‘고독’과 정지용 작사/채동선 작곡의 ‘고향’을 소프라노 조수미의 노래로 감상하였다. 한국적 정감이 깊게 배어나는 가사와 극히 서정적 아름다움을 지닌 선율을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소프라노가 해석하여 부르는 노래! 어느 여학생 동문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고 하였다.
약 15분간의 휴식시간에 김내원 동문이 준비해 온 맛있는 화과자로 입을 즐겁게 한 뒤, 후반에는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감상하였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프로테스탄트 교육을 받은 브람스의 음악에는 북독일 특유의 신중함과 중후함, 견실함과 종교적 색채 등이 배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는 바흐와 베토벤에 특히 애착을 가졌고 고전적 절대음악을 중시하여 ‘신고전파’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나 후기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답게 골격은 고전양식을 취하되 중후하고 유려한 낭만적 정서가 풍부한 곡을 다수 작곡하였다.
피아노협주곡 제2번 Bb장조는 그가 청년기에 작곡한 제1번이 악평을 들은 후 20여년이 지난 1881년 완숙기에 신중하게 작곡한 걸작이다. 협주곡임에도 불구하고 통상의 3악장이 아닌 4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적 스케일에다 독주파트인 피아노와 관현악 파트가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융합하듯 긴밀히 어우러져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조화를 이룸으로서 교향적 협주곡(Symphonic Concerto)의 대표 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1악장, 전체 오케스트라나 피아노가 아닌 호른이 부드럽고 장중하게 제1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고 교향악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협주곡풍 소나타형식으로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가 제1주제와 제2주제를 오가며 힘 있고 서사적으로 펼쳐진다.
제2악장은 협주곡에서는 드물게 쾌활한 스케르쵸 악장이다. 강렬한 피아노와 우수에 찬 듯한 현악기 선율 간의 대비가 정열과 사색, 탄식과 유머 등이 교차하는 듯한 흥미로운 곡이다.
제3악장은 마치 첼로협주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첼로가 중후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길게 연주한다. 피아노가 이를 함께 꾸미면서 두 악기가 대화하듯 조용히 끝나는 이 악장은 특히 아름답다.
제4악장, 브람스답지 않을 정도로 이탈리아 풍을 연상시키는 밝고 경쾌한 음악이다. 브람스는 이 곡을 두 번째 이태리 여행 직후 작곡하였는데 그곳에서 받은 인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통상 마지막 악장에서 보는 웅장함이나 독주 악기의 화려한 연주 없이 피아노가 비교적 절제된 연주로 오케스트라와 조화된 협연을 펼치며 힘차게 곡이 끝난다.
50분 이상이 소요되는 대곡이라 7시로 예정되어 있는 저녁식사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제2악장은 감상을 생략하였지만 장대한 교향적 협주곡의 멋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서초갈비식당에서 저녁식사와 그 옆의 커피집에서 그야말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고 올해의 마지막 동음회를 끝냈다.
참석자:
김영순, 김성수, 장순근, 이정균, 장내식, 이경애, 윤화자, 정덕진, 임혜순, 김근수, 김윤희, 박성수, 김정희, 최인용, 유한용, 이종윤, 김두환, 부정애, 최재원, 이방환, 김용태, 김내원, 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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