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아버데어 국립공원(Aberdare National Park)
아버데어는 나이로비 북쪽에 있어 암보셀리에서 가려면 다시 한 번 나이로비를 거쳐야 한다. 아버데어는 울창한 삼림이 있어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과 야행성 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공원에는 나무 위에 롯지(Lodge)를 짓고 그 모습에 꼭 어울리는 트리톱스(Treetops)라는 호텔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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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1952년 공주일 때 남편 필립 공과 바로 이 트리톱스에 묵고 있을 때 아버지 조지VI세가 승하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왕의 직위를 인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공주의 신분으로 나무에 올라가 여왕이 되어 내려온 역사적인 곳이다. 이러한 연유로 저녁 만찬 테이블에 놓인 네임 카드에는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이란 문구가 쓰여 있을 정도이며, 50년 전 이 사실이 보도되었던 당시 신문기사를 모아 방문객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저녁 어스름이었다. 두 개의 호수 중앙에 위치한 롯지는 탁 트인 옥상과 간단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라운지를 사층에 만들어 놓았고. 이층과 삼층에 위치한 이인용 객실에도 호수를 향해 창문을 만들어 놓아 물을 먹기 위해 다가온 야생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지리적 조건을 잘 살린 천혜의 호텔인 셈이다. 화장실을 겸한 각층에 마련된 공동욕실에는 뜨거운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두개의 샤워장이 있다.
인기척에 동물들이 놀라 달아나거나, 아예 오지 않는 수도 있다 하여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소리를 조심하는 것은 물론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말라는 당부를 지배인으로부터 수차례 들어야 했다. 이곳은 롯지의 형태나 지리적 위치, 동화 같은 엘리자베스 여왕 이야기로 유명할 뿐 아니라, 총 객실이 80개뿐이어서 일 년 전에도 예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두 개의 호숫가에 소금을 뿌려 놓아 코끼리와 물소 멧돼지 등이 자유롭게 찾아와 물을 먹고 소금을 핥아먹었다. 취침 중인 한 밤중에 쉽게 만날 수 없는 아프리카 빅 5가 나타나면 가볍게 벨을 울려 잠을 깨워주는 자상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한 번 울리면 사자, 두 번 울리면 코뿔소라고 한다.
그곳에 투숙한 모든 손님이 함께 한 방에서 식사하는 저녁만찬 시간이 7시 이어서 그 사이 목욕을 하고 옥상과 사층 라운지를 돌아다니며 호숫가에서 소금을 먹고 있는 코끼리 떼와 멧돼지를 볼 수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 각자의 이름이 기재된 테이블을 찾아 앉으면 양식 풀코스가 제공된다. 음식의 맛은 물론 접시를 꾸민 세밀한 데커레이션까지 참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한 창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전깃불이 나갔다. 놀라움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잠시의 정적이 찾아든 순간, 요란한 음악소리가 울리며 원주민 복장을 한 흑인 일행이 촛불과 횃불을 밝혀들고 홀 안으로 들어와 몸을 흔든다.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온 스웨덴 부부와 생일을 맞은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온 어린이를 위한 서프라이징 파티를 위한 잠깐의 해프닝이었다. 홀 안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너나없이 박수를 치며 그들을 축하했다. 신혼부부의 뜨거운 입맞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가족들이 건네는 선물을 받아든 노란 머리의 소년. 그들에게는 일생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가 마련해 준 생일 파티라는 옆 테이블에 앉은 주인공을 바라보며, 이런 생일을 손자나 손녀에게 안겨줄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과 시간과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가장 큰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설핏 잠이 들려는 순간 가볍게 울리는 벨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사자가 나타났다는 신호다. 주섬주섬 덧옷을 걸치고 옥상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계단 코너에는 추위에 대비하라는 담요가 수북히 쌓여있다. 참으로 담요만큼 따뜻한 배려가 아닌가. 이방 저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담요로 어깨를 감싸며 분주히 옥상으로 향했다. 모두들 발소리가 나지 않게 발뒤꿈치를 든 채. 옥상에 마련되어 있는 나무의자에 몸을 놓고 담요로 어깨와 무릎을 덮은 채 사자의 모습을 찾아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두리번거린다.
그곳의 어둠은 검지 않았다. 호숫가에 설치된 외등 탓만은 아닌 듯 했다. 멀리 검게 우거진 숲 속 하늘 위도, 그 너머 길게 이어진 너른 하늘 모두가 푸르게 보였다. 맑은 공기 탓인가. 야생의 숲은, 인간의 손길이 스치진 않은 이 광활한 땅은, 하늘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푸른빛을 밤에도 고스란히 토해내고 있었다.
하늘은 하나다. 땅도 하나다. 다만 인간이 그들의 이익을 구하기 위해 영역을 나누었으며 제마다 제 땅이라 주장하며 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과 기아의 땅, 아프리카는 짙은 어둠이 내린 이 밤, 그 슬픔을 감추지 못해 우울한 푸른빛으로 통곡한다. 사자는 호수 건너편에서 물을 먹고 있다. 어둠을 헤치고 자신의 거동을 응시하는 수많은 눈들을 의식한 것일까. 보다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건만 놈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놈의 자유이고, 기다림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열대지방의 차가운 밤바람이 스산하게 온몸을 에워싼다. 담요를 당겨 목언저리를 꼼꼼이 감싼다. 사자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나는 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고요만이 가득한 푸른 어둠에 몸을 맡긴 채 밤의 신비로움에 젖어든다. 밤. 그것은 어둠을 의미하며 휴식을 위한 시간이다. 그러나 사자와 같은 야생동물들은 이 밤을 유희의 시간으로 즐긴다. 그들의 시간을 탐색하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일까. 사자의 생태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일까.
나는 사자에 대한 관심을 거둔 채 투명한 푸르름이 감도는 하늘과, 쏟아질 듯 무수히 매달린 별들의 반짝임에 현혹되어 넋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랬다. 이곳의 밤이 푸른 것은 별들이 내뿜는 빛이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별을 잃고 사는 도시의 인간은 밤하늘이 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꿈을 잃은 사람의 우울한 표현이다. 이 깊고 푸른 밤하늘은 말없이 속삭인다. 밤은 결코 어둠이 아니며 그것은 다만 빛을 잃은 사람에게만 검게 보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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