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는 게임이다.
사파리는 아침먹이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동물을 볼 수 있는 새벽과 한낮의 열기를 피해 낮잠을 즐기던 동물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오후 네 시 경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우리의 사파리는 점심 식사 후 잠시의 휴식을 취한 뒤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사파리는 게임이다. 초원에 들어선 밴은 기사의 안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동물을 찾는다. 사냥하기 힘든 ‘아프리카의 빅 5’라 불리는 사자, 검은 코뿔소, 표범, 들소, 코끼리를 찾아 초원을 누비고 다닌다. 혹여 운이 좋아 사자라도 보게 된다면 밴 한 대 당 기사에게 10불의 팁을 주는 것이 상례라고 한다. 사자나 코끼리 떼를 먼저 발견하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른 팀에게 무전연락을 한다. 그러면 너도나도 서둘러 그곳으로 모여든다.
누가 먼저 무엇을 찾아내는가. 이것이 오늘날의 사파리라면 정말 게임임에 틀림없다. 나이로비에서 출발할 때 나누어 준 국립공원 안내서를 보면 어느 곳에서 어떤 동물을 몇 마리 보았는지 기록하는 종이(Animal checklist)가 있다.
379㎢에 달하는 넓은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수많은 코끼리 떼와 코뿔소, 들소, 치타, 얼룩말, 하이에나, 다양한 종류의 가젤, 하마를 볼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간혹 물을 먹으러 나온 사자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만년설에 붉은 노을이 물든 킬리만자로 아래로 코끼리 떼가 거니는 모습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해마다 수백 명의 사진작가와 사파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가장 대표적인 국립공원이다.
사파리 게임을 한다는 것은 흥분을 억제할 수 없는 하나의 경이로움이다. 어느새 입에 익은 ‘빅 5’를 찾아 밴에 동승한 우리 일행은 모두 일어서서 초원을 훑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울리는 무전기의 지지직 소리에 귀를 세운 채 우리 팀이 먼저 사자나 코끼리를 발견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우리말의 ‘빨리 빨리’와 비슷한 음인 스와힐리어 ‘뽈레 뽈레’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천천히’라는 뜻이란다. 성질이 급한 우리 민족의 성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르코는 연신 ‘뽈레뽈레’를 외치며 초원 사이사이에 나 있는 도로를 누비고 다녔다. 가젤, 얼룩말, 타조, 기린 같은 것은 동물로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빅 5’만을 보고 싶어 안달이다.
멀리 킬리만자로가 보이고 그 밑으로 아프리카 아카시아 십여 그루가 나란히 서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황금빛 노을이 만년설을 묽게 물들이고 있다. 정말 장관이다.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서술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장대한 서사시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어디서 나타났을까. 수십 마리의 코끼리 떼가 줄지어 지나간다. 부채 같은 큰 귀, 기둥 같은 다리, 그리고 긴 코와 굵고 긴 상아, 정녕 이제까지 보아왔던 코끼리이건만, 이곳의 코끼리는 어딘가 다르다. 가장 몸집이 큰놈이 맨 선두에 서고, 다음에 그보다 조금 작은 놈이 서너 마리 선 뒤에 아기 코끼리 십 여 마리가 마치 한 줄에 엮긴 듯 줄지어 따라 걷는다.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듯 다시 덩치 큰 놈 서너 마리가 뒤를 잇는다. 옆으로 이탈하는 놈도 앞으로 추월하는 놈도 없다. 질서,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위엄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장대한 이동이었다. 보호하고 보호받고, 그래서 그들은 질서의 아름다움을 안다.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보다 색깔이 검다. 제 공간에서 제 마음대로 사는 자유로움과 신선한 공기, 햇빛, 아마도 그런 자연 속에서 우러나는 제 빛이리라.
곳곳에 벽돌로 만든 도로 표지판 위에 앉아 있는 빨간 궁둥이의 원숭이를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무전기가 성급한 굉음을 지른다. 마르코가 뭐라 응답하더니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속도를 낸다. 사자가 물을 먹고 있단다. 사자. 이름만 들어도 어깨가 오그라드는 듯 두려운 동물, 그러나 얼굴을 에워싼 황금빛 갈퀴의 수사자가 보여주는 위용은 동물의 제왕이란 이름에 손색이 없다. 그늘진 숲 속 작은 도랑에 수사자 한 마리가 엎드려 물을 먹는다. 보다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고,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십여 대의 밴이 삽시간에 뒤엉킨다. 조바심치는 인간의 욕심에는 아랑곳 없이 여유롭게 물을 먹던 사자는 얼굴을 들어 우리를 바라본다. 사람이 사자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놈이 우리를 구경하는 것 같다. 태연자약, 여유 만만, 놈은 두려울 것 없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숲 속으로 사라진다.
코앞에서 사자를 보았다는, 아니 놈의 얼굴 앞에 서 있었다는 흥분, 그리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당당한 모습과 여유. 놈은 이 땅과 하늘 그리고 이 너른 초원이 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주인의 허락이 있었다 해도 우리 인간은 그들의 영토에 무단 침입한 불청객이다. 사자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동물원에서, 인공으로 만든 사파리 공원에서 우리는 수없이 사자를 보았다. 그러나 방금 전 눈앞에 있던 놈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그 모습 그 얼굴의 사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에 갇힌 동물이 아닌 이 땅의 당당한 주인이었다. 그는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제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아닌 차에 갇혀 놈의 위용에 오그라든 목덜미에 카메라를 멘 채 넋을 잃을 뿐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놈이 사라져간 어둑신한 나무숲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사자를 보았다는 기쁨과 흥분을 마르코에게 10불을 건네는 것으로 대신하고 또 다시 다른 동물을 찾아 배회한다. 아직도 눈앞에는 방금 본 윤기 도는 황금빛 사자의 너그러운 얼굴과 우람한 체구가 어른거린다.
이번에는 어떤 동물을 볼 수 있을까. 그것이 주는 느낌은 어떠할까. 이제까지 보고 느끼고 알았던 동물이 주는 이미지가 아닐 것이라는 상상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에 갇힌, 자유를 잃은 동물은 동물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하여도 그들은 박제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야생 동물을 관찰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봄이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의 자연, 그 반대 개념의 인공적인 것이 주는 편리함 뒤에는 얼마나 많은 구속과 위선이 있으며 그런 것들이 또 얼마나 깊게 인간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인간은 말과 글을 갖고 있는 유일한 동물로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그들이 만든 문화와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얼마나 깊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것일까. 늘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보다 자연과 가까이 살기를 갈구했지만, 이제 그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야생의 초원에 들어와 내가 인간임에 감사한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나 하는 반성의 소리를 잠재울 수 없었다.
어둠이 깃을 펴기 시작하는 시간, 우리는 롯지로 길을 잡았다. 아프리카 빅 5 중 두 가지 사자와 코끼리 떼를 보았다는 흥분,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노을을 보았다는 감동은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피로도 잊게 했다. 멀리 들소 떼가 서성인다. 가장 큰 동물 두 가지를 보았다는 자부심일까. 보다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도, 시간도 없다. 다만 한 가지 표범을 보고 싶다는 열망은 잠들지 않는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여행자는 킬리만자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표범이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곧 알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첫 대목이 목에 걸려서일까. 표범에 대한 집착이 떨어지지 않는다. 초원의 어둠은 으스스한 한기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두 시간 가량 맛본 사파리 게임의 흥분도 밀려오는 어둠과 공포심을 잠재우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도 저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나약함에서 비롯된 공포는 아니었을까.
또 다시 무전기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울어댄다. 리노(Rino), 코뿔소가 발견되었다는 외침이다. 암보셀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던 코뿔소까지 우리를 환영하나 보다. 정말 운이 좋다며 한 번에 이렇게 다양한 동물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고 서둘러 차를 모는 마르코의 검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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