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그 설렘을 위한 전날:
본격적인 사파리를 위해 오전 9시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출발하여 5시간 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기내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한 후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받게 되나, 이 나라는 도착 후 입국신고서를 받아 작성하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소지한 돈의 액수를 정확히 기입하여야 환전과 출국이 용이하다는 안내가 있어 조금은 겁먹은 채 하나 하나 기재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책상 하나 비치되어 있지 않는 좁은 공항에서 기재사항을 적어 가는 동안,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 한국과 터키 전 중계가 있어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과 귀가 바빴다. 우리나라가 터키에 지고 있다는 소식은 일행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하나같이 마음이 분주했다. 빨리 출국수속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여 게임을 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열화 같기 때문이었다.
하긴 케이프타운에서도 대 스페인 전을 보기 위해 관광일정을 늦추면서까지 호텔 회의실에 텔레비전을 비치해 달라고 요구하여 합동 응원을 한 열성 팬들이고 보면, 몸은 아프리카에 마음은 한국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나라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은 물론 붉은 악마의 질서정연한 응원과 빨간 티셔츠는 한국사람임을 자랑으로 여기게 만들었으며, ‘필승 꼬레아’와 다섯 박자의 박수는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외치는 구호였다. 여권에 찍힌 ‘Republic Of Korea’의 금박은 검문 없는 통과를 의미하는 마법의 글귀였고,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이 소리는 아프리카 사파리를 보다 즐겁고, 보다 신나게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두려움과 불쾌한 기분으로 기재한 입국신고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만으로 단 한 마디의 질문과 짐 검색 없이 전원 입국할 수 있었다.
남아공에서 출발할 때 이미 사파리만을 위한 짐을 간단하게 정리한 탓에 일행 모두 배낭과 핸드 캐링한 작은 트렁트 하나로 족했다. 사파리 기간동안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케냐 전역에 퍼져있는 국립공원을 매일매일 차로 이동하여야 하므로 짐의 부피가 크면 그만큼 사람이 앉을 자리가 좁아진다는 가이드의 열화 같은 잔소리 덕에 우리는 세면도구와 각자에게 필요한 비상약, 갈아입을 옷 몇 가지만 챙겼을 뿐 나머지 짐은 모두 요하네스버그 호텔에 맡겨두고 출발했다.
공항에서 밖으로 나온 시각은 오후 2시. 적도의 땅에 쏟아지는 햇살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으며 바늘 끝처럼 따가웠다. 7인 1조가 되어 앞으로 일주일간 한 차안에서 함께 행동해야 한다. 이제까지 미국이며 유럽 등지에서 보아온 흑인에 비해 더욱 검고, 반짝반짝 윤기가 도는 피부를 지닌 마르코라는 명찰을 단 뚱뚱한 기사가 굵은 음성으로 ‘잠보’하며 인사를 건넨다. 케냐에서는 무조건 ‘잠보’라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나도 넉살좋게 ‘잠보’하며 마주 인사를 건넸다. ‘잠보’는 영어로 ‘good’과 같아 주고받는 인사도 되고, 좋다는 말이 된다고 하니, 앞으로 무조건 ‘잠보’란 말만 쓰면 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좋은 게 좋은 것’일 테니까.
차체의 지붕이 열린다는 것말고는 사파리 전용 밴이라 하여 구조가 특이 한 것은 없었다. 기사 석은 우측, 그 옆에 한 자리, 그 뒤에 따로 떨어진 두 사람 자리가 두 줄,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맨 뒷줄, 그리고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마르코는 싱글벙글 웃으며 짐 싣는 것을 도와주었다. 차곡차곡 일곱 명의 짐을 싣고 마치 넝마 같은 담요로 짐을 덮는다. 다음 날 알게 된 것이지만,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짐에 먼지가 앉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별로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형식은 형식이니까.
초원으로 들어가기 전 하룻밤 묵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시내에 있는 호텔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나이로비란 말은 마사이 말로 맛있는 물, 차가운 물이란 뜻이란다. 적도에서 남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이로비는 해발 1,700m의 고원에 있어 평균기온 18℃정도의 살기 좋은 곳이다. 도로 양옆에 보랏빛의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자카란다(Jakaranda)가로수와 그 그늘 아래 백일홍, 금잔화, 봉숭아 등 너무도 눈에 익은 꽃들이 피어 있어 마치 잊었던 고향에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쾌적한 기후와 원활한 교통조건 때문에 나이로비는 백인이주민들을 중심으로 ‘화이트 하일랜드’라는 광대한 지역을 형성, 동아프리카의 중심적 대도시로 발전하여 케냐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독립 후 남아공과 달리 흑인 중심의 정부만을 고집한 탓에 낡을 대로 낡은 자동차는 검은 매연을 거침없이 내뿜었으며, 빌딩들은 곧 무너져 내릴 듯 파손되었고, 거리를 가득 메운 남루한 옷차림의 인파는 과연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의심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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